오랜만에 다시만난 루싸입니다. 어두운 조리개와 적당한 가격으로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는 러시아 독자 설계의 초광각 렌즈죠. 그런데 오늘 살펴보실 렌즈는 그 중 굉장히 초기 시리얼의 렌즈입니다. 중간에 빠지는 시리얼 넘버를 무시하고 621번째로 생산된 Russar MP-2 20mm F5.6 입니다. 보통 1000번대 안쪽의 시리얼이 상당히 귀한편으로 알려져 있는데, 저도 이렇게 초기 생산분을 만나보기는 처음입니다.
의뢰해주신 분께서는 디지털 M바디에서 사용하시다가 왠지 조여도 상이 흐릿한 기분이 드신다며 연락을 주셨습니다. 보통 광각렌즈는 조리개가 어둡기 때문에 초점 오차를 잡기가 어렵고 느끼기도 쉽지 않은데, 알이 작은 만큼 조금만 오차가 있어도 초점이 나가거나 해상력의 저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초기형 Russar는 후기형의 렌즈들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큰 차이점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각인의 크기가 더욱 크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경통부의 상태 등도 세월에 비해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시리얼넘버 부분의 클로즈업입니다. No. 00621로 상당히 초기형입니다. 러시아 렌즈들은 보통 후기시리얼보다 초기형이 인기가 많은데, 뒤로 갈수록 QC와 만듦새가 떨어지거나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특히 Zeiss의 광학자재가 독일의 2차대전 패배로 러시아로 넘어가게 된 시기에는 양쪽의 자재들이 혼용되어 렌즈알은 독일, 경통은 러시아의 것이 사용되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초기형의 특징적인 가늘고 큰 폰트 역시 사진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경통과 각인 등의 형태로 7가지 정도의 바리에이션이 존재하며,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 처럼 2014년 로모그라피에서 다시 복각된 개체까지 더하면 8개가 됩니다.
이렇게 후옥을 감싸고 있는 리테이너링을 풀면 경통과
렌즈뭉치가 분리됩니다. 비교적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번에는 후옥부터 분리합니다. 3군과 4군의 모습입니다.
루싸는 전체 4군 6매의 구성으로 되어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바깥쪽 렌즈의 경우 코팅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접착된 2장의 렌즈는 양쪽에
보라색의 코팅이 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군과 4군의 모습입니다. 후옥부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이시죠?
Russar 20mm F5.6 역시 대칭형 설계로 제작되었습니다.
보시는 것 처럼 오목-볼록렌즈의 구성이 조리개를 경계로 양쪽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뒷면에서 본 조리개뭉치의 모습입니다. 적보랏빛으로 코팅된 2군의
컬러가 아름답습니다. 조리개날은 실제 직경이 1cm에도
못 미칠정도로 작습니다. 조리개날의 기름은 보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깔끔한 상태가 유지되어온 상태입니다.
이제 대물렌즈 쪽으로 가보겠습니다.
대물렌즈쪽은 주로 외부환경에 노출되어 열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적당한 힘으로 풀리도록 사전에 처리를 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잠깐 숨고르기를 하고 갑니다.
4군 6매의 렌즈를 모두 분해하고나니 갑자기 조리개날이 생각났습니다.
손가락의 굵기를 보시면 저 부분이 얼마나 작은지 감이 오실 것 같습니다.
절대로 조리개날이 풀려나오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합니다;;
렌즈는 샌드위치처럼 조리개날 뭉치를 중심으로 양쪽에 차곡 차곡
쌓이도록 제작 되었습니다. 각각의 렌즈는 직경과 결합부 모양이 달라
구조상 정위치가 아닌 곳에 끼울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쌓인 렌즈는 앞 뒤 끝단을 링으로 고정시켜주면 되므로
조립은 아주 간단한 편입니다.
이렇게 샌드위치식으로 렌즈군을 쌓아 고정하는 형태는
Zeiss Jena 생산품의 조립방식입니다.
이 간편하고 확실한 방법은 러시아 Orion-15 28mm F6 는 물론
서독의 Zeiss-Opton Planar 35mm F3.5 렌즈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2군 렌즈의 클리닝 전과 후. 보통 렌즈와 렌즈가 고정된 작은 경통은
제대로 클리닝 하지 않으면 위 좌측 사진과 같이 경계면에
닦이지 않은 스테인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용제를 사용해 깨끗하게 닦아 줍니다.
렌즈알을 닦아내다 렌즈 안쪽으로 면봉이 쑥 꺼져서
당황했던 순간입니다. 제가 왠만하면 짤방 같은것들 사용을
안하는데 이건보자마자 생각나서 아래 첨부하였습니다.
아...이렇게 완벽한 렌즈가!
클리닝을 마친 후 렌즈의 알을 살펴봅니다.
렌즈 클리너를 하나 사셔서 닦아주고 필터
빨리 끼우시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주 깨끗한 렌즈를 정말 잘 구하셨네요.
아래는 작업 전, 후의 촬영 결과입니다.
촬영날짜, 날씨 등을 감안하시고 보시면 됩니다.
광축이 틀어졌던 부분과 무한대가 나오지 않았던 부분이 정상화 된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마 과거 조립된 과정에서 광축이 틀어졌거나 하는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네요.
대칭형 초광각 렌즈 특성상 중앙부 위주로 해상력 체크를 하였습니다.
물론 아래 첨부한 원본을 체크해보시면 주변부도 개선 된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ussar와 같이 대칭형의 초광각 올드렌즈들은 CCD나 CMOS를 가진 디지털 바디에서
외곽부에 아래 사진처럼 컬러캐스팅과 이미지의 이지러짐이 나타납니다.
최근 기존의 DSLR을 씹어먹을 기세로 품절사태를 빚고 있는 A7M3에서도 이 부분은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을 정도로 아직 디지털 센서기술의 발전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굳이 제조사에서 올드렌즈에 맞추어 센서를 개발하는 것 보다는 신 렌즈를 설계하여 판매하는 편이
이득이기 때문에 아마도 한참동안은 올드 광각렌즈는 필름바디에서 사용하는 것이 적합할 듯 합니다.
저도 새로 B&H에서 포지티브 필름들을 주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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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이 끝난 Russar 20mm F5.6렌즈와 M4의 모습입니다.
디지털에서 초점이상을 확인하고 필름바디에서 마지막으로 체크하여
무한대 교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