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새해 다짐은 개나 줘버리고...이제야 포스팅을 하게 되어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제 인생의 절반은 사과인듯ㅠㅠ) 그래서 이번에 큰 거 하나 가져왔습니다.
사실 이 렌즈를 수배, 성공한 시점이 3월이니 거의 리뷰에만 3개월이 걸렸네요. 뭔가 매번 리뷰마다 컨셉에 맞춰 배경도 설정해주고 싶어 이번에는 개발과 운영 시기가 비슷한 소련제 권총 Tokarev TT-33을 가스건으로 구매, 도장을 벗겨내고 표면처리를 새로하는 염병도 떨어보았습니다. 이렇게 점점 무언가에 완벽을 기하고는 싶은데 날이 갈수록 체력과 지력은 떨어지는 무기력한 40대 아재의 생업빙자 취미의 한 페이지가 어찌저찌, 여차저차 완성되었네요, 역시....이게 낭만이지!
6월 초, 서울 모처의 현상소에서 벌어진 지인들과의 속칭 '어르신모임' 술자리에서 거의 완성에 이른 FED 28mm F4.5 렌즈 리뷰 포스팅의 도입부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막막했던 나는 푸념을 늘어놓고 있던 중이었다.
"이번에 리뷰를 쓰려고 하는 렌즈가 있는데..
AI가 검색하는 정보의 질과 효율이 좋지 않을까 싶어 기대속에
ChatGPT를 활용해봤지만 단편적인 것 밖에 없어서 실망이었단ㅎㅎ"
"결국 또 기존 자료와 검색 삽질로 정보들을 그러모으긴 했는데..
뭔가 도입부라도 재미나게 짤 순 없을까? 기가 막히는 제목이라던지?"
대뜸 항상 수려한 문장력으로 기름기 잘잘 흐르는 포스팅을 완성시키는
Q가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는지 유쾌한 어투로 말했다.
"이야 ChatGPT도 모르는 렌즈네!"
무릎이 탁 쳐졌다! 물론 자신의 홈페이지에선 좀 더 고매한 표현을 썼을테지만, 여하튼 그의 힌트에 살짝 변화구를 준 리뷰는 숙취 속에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는 구전설화가...
여하튼 정말 놀랍게도 FED-35 28mm F4.5는 이렇듯 존재조차 몰랐던 렌즈였다. 주변 지인들조차 Elmar 35mm나 Hektor 28mm 정도로 봤다가 네임링의 키릴문자를 보고 이게 뭐냐고 되물을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렌즈인데, 그도 그럴 것이 단 4년의 짧은 기간동안만 생산 되었고 그에 걸맞게 그 개체수도 매우 적다.
구소련의 광학기술 설계와 개발은 제2차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전쟁통에 5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세상에 나온 Russar MR-2 20mm F5.6처럼 Fed 28mm F4.5 역시 러시아의 독자적인 설계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루싸의 상세한 리뷰는 위의 leicasisyphus.com 링크를 참조) 루싸와 달리 다행히 좀 더 빠른 개발 속도 덕분에 전쟁이 시작되기 전인 1937년 출시에 성공하였지만 이내 세계대전의 발발과 서부 산업의 중심지이면서 독일과 가까웠던 탓에 우크라이나 하르코프가 점령당하면서 빠르게 생산이 종료, 이후 공장이 파괴되기에 이른다. 러시아의 28mm 렌즈는 1955년 독일의 광학기술을 접목시킨 토포곤 설계 기반의 Orion-15 28mm f4로 세대교체 되어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된다. (오리온의 상세한 리뷰는 위의 photonomad.tistory.com 링크를 참조)
1937-1941년(39?)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 Kharkiv (하리코프/Kharkov Dzerzhinsky)에서 생산된 FED-35 28mm F4.5는 외형은 마치 스크류마운트의 헥토르 28mm와 매우 유사하지만 설계 자체는 다른 가우스 타입의 4군 6매 형식의 독자적인 형식이다. 웹상에는 6매의 렌즈가 모두 접착되지 않은 단면도도 보이지만 이는 렌즈 전개도를 잘못 해석한 것으로 분해 확인 결과 1군과 4군의 렌즈는 분명히 접착되어있다.
Fed 28mm F4.5의 설계자나 생산량, 기타 상세한 정보가 전무한데 그 이유는 독소 전쟁 중 1941년 우크라이나의 함락 이후 여러차례에 걸쳐 공장이 완전히 파괴 되면서 기술문서가 함께 유실 되었기 때문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일련번호의 범위는 4만번 ~ 4만6천번대 사이로 각 배치별로 몇개가 생산되었는가에 대한 사항은 여전히 알 수 없다.
외형적인 측면에서는 FED 시리즈가 라이카의 Barnack 타입 카메라와 렌즈의 디자인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Leitz A36 FIOLA UVa 등의 필터 호환이 가능하지만 개조를 거치지 않는 이상 마운트는 가능하지만 라이카 스크류 바디 / M바디에서의 초점연동 등 완벽한 사용은 어렵다. 그 이유는 바르낙의 카피로 알려져 있는 FED 시리즈의 플랜지백이 0.5mm 가 짧기 때문에 FED용 렌즈를 라이카 카메라에서 사용시 무한대가 나오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렌즈의 마운트를 맞추어 깎아내고 스크류 시작 위치 때문에 포커싱 레버와 화각 레버 간섭, 이중상 연동부의 재설정 및 간섭 부분 가공이 필요하며 리뷰에 사용한 렌즈는 이 부분을 손봐 무한대 초점을 맞추고 원활한 연동이 되도록 손을 본 개체임을 밝힌다.
사실 이 렌즈의 구매를 결정하기 전까지 상당한 고민을 했었는데, 위와 같은 사용상의 문제점은 손을 보면 되지만, 웹상에서 검색되는 렌즈의 결과물이 대부분 헤이즈가 가득하거나 해상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광학적 한계로 인한 것인지, 오버홀을 통해 극복이 가능한 부분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1930년대 출시된 28mm 렌즈들은 대물렌즈 지름이 5-8mm 정도로 극히 작아 광학재의 균일성이나 표면의 연마기술 문제를 겪었는데 Leitz Hektor 28mm F6.3조차 화상의 해상력이 일정치 않던 시절인데다 가격마저 $700-800로 미상의 러시아 렌즈에 이 금액을 태우는 것이 과연 이성적인 일인지 고민이 되었다.
일본 카메라 시장에 정통한 지인에 따르면 상태가 좋고 라이카에서 사용가능하도록 개조된 제품이 150만원 가까이 한다고 하니 뭔가 그만한 매력이 있지 않을까?(하지만 일본에서 조차 작례를 찾기 힘들던데?) 결국 안써본건 써보고 죽자 라는 생각에 눈 딱감고 최대한 헤이즈는 가득해도 렌즈 표면은 깨끗해 보이는 개체를 지르고야 만다.
도착한 렌즈는 역시 헤이즈가 심하고 내부 흑칠이라던지 마감이 안된 부분들이 많았지만 다행히 스크래치가 거의 없는 완벽한 상태였다. 마감 부분은 러시아산 렌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특성이기도 한데, 여담이지만 FED 공장은 아동노동공동체로 위 사진처럼 광학제품의 가공 및 조립을 10대 아동들이 맡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오버홀 및 흑칠 등 마감, 경통 반사방지처리, 컨버젼을 모두 마친 후 두근거리는 첫 테스트를 필름으로 마쳤다. 스캔 결과물이 업로드 되었고 긴장 속에 열어본 파일을 보고 아....성공. 웹에서 봤던 뿌연 결과물들은 역시 무한대 부족 및 헤이즈, 마감 문제로 인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곧바로 필름을 종류별로 냉장고에서 꺼내 1-2개월에 걸쳐 촬영했다. 각자 아래로 이어지는 컷들을 확인하면서 마지막 총평과 느낀 점을 비교해보시면 나름 서로 의견을 나누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으실까 생각된다.
개방에서는 상당한 비네팅이 생기기에 극적인 효과나 집중도를 연출하는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어보이며 일반적인 촬영에서는 조리개를 2-3스탑 이상 조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나 최외곽 코너의 비네팅 및 화상의 이지러짐은 조리개를 최대한 조여도 약간 남는 것이 헥토르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다. (수평 등을 맞추기 위해 크롭한 몇 컷에서는 비네팅이 없는 것처럼 보이므로 참고필요)
이러한 연유로 비네팅이 부각되는 단톤의 피사체나 하늘이 들어간 풍경보다는 스냅 위주의 촬영에 적합한 렌즈이며, 해상력이 뛰어나면서도 화상전체가 고르게 분포되어 1930년대 가장 밝은 28mm 렌즈임은 물론 품질 및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렌즈이다.
특히 무코팅 렌즈임에도 컨트라스트나 화사한 컬러 재현력이 뛰어난 점과 개방촬영에서 광원을 넣을 때 생기는 독특한 원형 플레어들이 겹쳐지며 만들어지는 빈티지한 분위기는 이 렌즈만이 갖는 개성이라 할 수 있겠다.
덧: FED? ФЭД가 뭐지??
'FED(ФЭД)는 소련 비밀경찰의 창시자이자 철의 펠릭스라는 별명을 가진 정치가 Felix Edmundovich Dzerjinski의 이니셜로 러시아 정부는 이를 기리기 위해 몇몇 지역의 지명 및 카메라, 기차 등의 명칭으로 부여하였다. KGB 아카데미 졸업생들은 매년 이 제르젠스키가 출생한 저택에서 선서식을 거행한다.' -wikipedia
FED 카메라의 명칭에 관한 정보를 찾다가 세상에나 이게 사람 이니셜이었다는걸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런데 비밀경찰이라니 왠지 구소련제 권총 같은 걸 배경으로 쓰면 좋을 거 같았다. 떠오른 물건은 FED 28mm F4.5와 보급 시기가 비슷한 Tokarev TT-33, 구소련의 프로파간다로 유명한 사진 속 바로 그 권총이다. (촬영에 사용한 제품은 SRC 가스블로우백 제품)
물론 카메라 바디까지 진짜 FED로 매칭을 시켰다면 좋았겠지만 무광 블랙 도장의 Canon RF 바디가 나름 잘 어울려서 그대로 사용했다. 과몰입의 폐해가 이리도 무섭지만 어쨌든 포스팅을 완성 시키고 나니 ChatGPT로 시작해서 Max Alpert의 Battalion Commander 사진으로 뇌절하는, 어디서도 못볼 광기어린 리뷰가 나온 것 같아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