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mm 화각을 좋아하는 저로써 아직 기회가 닿질 않아 사용해보지 못하고 손만 빨던 렌즈가 있었습니다. 야생마처럼 거칠고 강한 그림을 그려내는 러시아 광학의 결정체 루싸, Russar MR-2 20mm f5.6 가 그 주인공입니다.
루싸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매력의 사진들은 이미 이웃분들에 의해서 접해보았는데요, 현재 스크류 마운트의 필름바디가 없어서(맙소사), 지금은 Sony A7에서 테스트해보고 있습니다. 컴팩트하고 가벼운 중량임에도 진중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니 정말 대단한 렌즈라는 생각이 듭니다. 러시아 여행 때 탑승했던 튜폴레프기(TU154)의 울퉁불퉁한 기체표면을 보고 떠올렸던 일련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동없이 미끄러지듯 날아올라 이내 하바롭스크공항에 착륙했던 때의 놀라움과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근 한달간의 기다림 끝에 독일에서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DHL로 배송된다고 해서 빨리 오겠네 기대했었는데
독일의 국영우체국 상호일 뿐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스페셜딜리버리와는
아주아주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유럽의 택배지옥이라는 DEFRAA에서 거의 3주간 업데이트가
없더니....오늘 목함지뢰가 배달 되었습니다. ㅎㅎㅎ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뚜껑을 열어보니 러시아 특유의 진동은 전혀 배려하지 않은
플라스틱 케이스가 나타났습니다. 재미있는건 뚜껑과 렌즈, 렌즈 캡의 로고가 아주
골고루 뒤섞여 있는...ㅎㅎㅎ 그리고 놀랍게도 렌즈 시리얼과 서명이
적혀있는 페이퍼가 함께 들어있더군요.
클립의 모양도 서방의 그것과 많이 다릅니다, 이베이질의 소소한 재미죠.
내용물 일체, 왼쪽 상단에 보이는 것은 크롬으로 만들어진 M 베이요넷 마운트 어뎁터인데
이것도 러시아에서 깎은건지 일반적으로 보이는 재질과도 다르고 28-90이라는
화각표시도 수기로 되어있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시리얼 연도로 보아 50년대 후반이나 60년대 초반의 생산품으로 보입니다.
블랙경통의 후기형 루싸는 시리얼 번호 앞 두자리가 생산연도인데 보통 80년대 이후
생산된 검은색 경통을 가진 러시아 렌즈의 경우 개체간 화질 편차가 많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크롬 경통의 초기 시리얼을 구하느라 오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오래된 렌즈 치고는 경통부 및 렌즈의 상태도 훌륭해서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서 빨리 스크류 바디를 구해서 슬라이드 한롤 물려 보고 싶네요 : )